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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는 누구인가?

성질블로그 2019. 2. 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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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손예진 주연의 '덕혜옹주'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포스터에 일본으로 끌려간 대한민국 마지막 황녀라는 글귀가 있어 덕혜옹주가 누구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영화를 보면 되지만 영화는 각색이 된 부분도 많기 때문에 덕혜옹주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여 찾아보게 되었다.


1912년 5월 덕수궁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조선의 마지막 옹주인 덕혜가 태어났다.

고종이 회갑을 맞던 해에 얻은 늦둥이 딸이다.

어머니는 소주방 나인 출신으로 고종의 후궁이 된 양씨. 고종은 이 늦둥이 딸을 애지중지하며 삶의 위안으로 삼았다.



하지만 1919년 고종이 승하하게 되었다. 이때 덕혜의 나이는 8살밖에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슬펐겠지만 고종의 죽음은 그녀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고종의 3년 상이 끝난 후 10살이 된 덕혜의 교육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다. 일제는 조선 황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덕혜에게 철저한 일본식 교육을 시키려고 하였다.

결국 1921년 일본 거류민이 세운 일출소학교라는 곳에 입학하게 된다. 당시 덕혜는 '복녕당 아가씨'로 불리고 있었는데, 이 때에 이르러 '덕혜'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받게 된다.

1925년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을 받아야한다." 라는 일제의 압박으로 인해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 당시 덕혜의 나이는 고작 14세에 불과하였다.

동경에 도착한 덕혜는 오빠인 영친왕의 집에서 여자학습원이라는 곳에 다니게 된다. 

하지만 1926년 오빠 순종의 죽음과 1929년 생모의 죽음으로 인해 타국에서 고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1931년 일제에 의한 정략결혼으로 인해 일본인과 결혼을 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조선땅에 퍼지게 된다.

일본인 아내를 맞은 영친왕과 같은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결혼 1년 후 딸을 낳게 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러가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커서 그런지 결국 조현병에 시달리게 된다.

1946년 정신병원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러다 결국 남편과 합의를 통해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딸 정혜가 자살하겠다는 유서만을 남기고 실종되었고 7년 뒤에 사망처리되는 가슴아픈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덕혜는 고국으로 가길 원했지만 이승만 정부는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박정희 정부시절에 탄원서를 올린 끝에 귀국길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1962년 37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덕혜는 14세의 어린 나이에 강제로 출국하게 되어 51세의 중년의 나이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일간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구중궁궐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라나 산천이 낯선 외국으로 끌려간데다 왜인과 뜻하지 않은 강제결혼을 하게 되자 모든 것이 구슬프고 무서워 세상살이를 체념하고 살려다가 심한 고민 끝에 정신병자가 되었다."


귀국 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요양했지만 회복은 되지 않았다.

결국, 1989년 4월 21일 덕혜옹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굴곡진 삶을 뒤로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녀가 마지막에 머물던 낙선재에 정신이 맑았을 때 썼다는 낙서가 남아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 대한민국 우리나라"


그럼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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