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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양만춘 장군과 안시성 전투란?

성질블로그 2018. 9. 2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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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안시성 (The Great Battle)'이라는 영화가 개봉하였다. 이 영화의 개봉으로 인해 우리 선조들의 강인함과 꺾이지 않는 굳은 의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안시성 전투가 무엇인지와 이 전쟁을 이끌었던 양만춘이란 장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하여 찾아보게 되었다.



▶ 정의

안시성 전투는 (645년, 보장왕 4년)는 고구려당나라의 전쟁 중, 당태종이 직접 지휘하는 군대가 대규모로 고구려를 침공하여 약 3개월여 동안 안시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였으나 끈질긴 항전으로 당나라를 물리치고 고구려가 승리한 싸움이며 1차 고구려-당나라 전쟁의 일부이다.


▶ 개요 및 전개

고구려 침략을 호시탐탐 노리던 당태종은 644년 침략 명령을 내려 약 50만명의 대규모 군사를 편성하여 고구려로 공격을 시작하였다. 당나라군은 효과적인 기만전술과 기습 등으로 고구려의 성들을 차례로 함락하였고 요동방면의 성들 중 하나인 안시성은 격렬히 저항하고 있었다. 이에 당태종은 '연개소문의 정변 때에도 안시성 성주가 복종하지 않아 공격을 받았으나, 항복시키지 못했다고 들었다'며 우회할 것을 주장하였지만 보급로가 차단될 것을 염려한 이세적의 건의를 받아들여 안시성을 공격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안시성을 구하기 위해 약 15만명 정도의 구원군을 보내었지만 당나라의 유인작전에 걸려 패배하고 말았다. 

당나라군의 안시성 공격이 시작되었지만 오랫동안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요동성, 개모성 등을 함락시킬 때 활약을 하였던 공성병기들이 산으로 구성되어 있는 안시성에서는 제대로 된 활약을 못하였다. 

이에 지지부진한 전투를 타파하고자 당태종은 모든 당나라군을 안시성으로 집결시켰다. 안시성의 동남쪽에 토산을 쌓으며 점점 안시성으로 접근하였으나 성 안에서도 성벽을 더욱 높게 쌓아 올려 굳게 방어를 하였다.

폭우로 인해 토산이 무너지며 성벽의 귀퉁이를 부서뜨리는 일 발생되었고 고구려군은 이 틈을 이용하여 무너진 성벽 사이로 나와 토산을 점령하였다. 당나라는 토산을 탈환하기 위해 극렬한 공격을 펼쳤으나 실패하였고, 날씨가 추워지며 군량마저 떨어지고 있었으므로 약 90여일간의 포위를 풀고 퇴각하게 되었다. 



▶ 양만춘은 누구인가?

고구려 보장왕 때의 '안시성 성주'인 양만춘은 역사서에서는 보이지 않고 '안시성의 성주'로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송준길의 [동춘당선생별집]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의하면 양만춘으로 밝혀져있다.

안시성은 지리적으로 험한 곳에 자리잡은 전략적 요충지일 뿐아니라 정예병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양만춘'은 '연개소문'이 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했을 때도 집권자인 연개소문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이에 연개소문은 안시성을 공격하였지만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양만춘'에게 안시성 성주의 직책을 그대로 맡기게 되었다. 

또한 '안시성 전투'에서 당태종은 '양만춘'의 화살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하였다는 이야기가 고려 후기의 문헌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충성심이 강하고 정의롭던 양만춘의 출생일과 사망일에 관한 기록이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현재와 같이 사방의 강대국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 물론 전체적인 상황인 옛날과 틀린긴 하지만 이러한 고구려의 기상, 안시성 전투에서 선조들이 보여주었던 용맹함과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양만춘 장군과 같은 고위 공무원들이 필요한 시기인 것같다. (요즘은 너무 자기 돈벌이에 공직을 이용하는 놈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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